한국인에게 '지방'은 약?…세계 의학계 뒤집은 위암 연구 결과
2025.09.09. 오후 05:20
위암은 폐암, 간암 등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는 치명적인 암이다. 특히 유독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병률이 현저히 높은데, 이는 짜고 절인 음식을 선호하는 동아시아 특유의 식습관과 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정보 속에서 어떤 것이 진짜 위험하고 무엇이 예방에 효과적인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연구팀은 위암 발생의 위험 요인과 예방 방안에 대한 최고 수준의 의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칼을 빼 들었다. 펍메드(PubMed), 엠베이스(Embase), 코크란(Cochrane) 등 세계적인 의학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무려 507편의 핵심 논문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대장정에 나섰다. 이를 통해 식이, 생활 습관, 특정 약물, 감염, 유전적 특성 등 총 139개에 달하는 요인들이 위암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각적이고 정밀하게 평가했다.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한 습관들이 위암 발생 위험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이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위험 요인은 위염, 위궤양의 주범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으로, 감염 시 위암 발생 위험이 무려 2배 가까이 치솟았다. '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주범이었다. 과도한 음주는 위암 위험을 최대 2.2배까지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고염식'과 '절인 음식' 또한 위험을 1.4배에서 2.0배까지 증가시켰으며, '흡연' 역시 1.3배에서 1.8배까지 위험을 높이는 명백한 발암 요인으로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 밖에도 정제된 곡물(흰쌀, 밀가루 등), 붉은 고기, 가공육, 고지방 유제품 섭취 역시 위암의 위험도를 높이는 식습관으로 지목됐다.

반면, 위암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호천사' 같은 습관들도 명확히 밝혀졌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섭취는 위암 발생 위험을 최대 40%까지 극적으로 감소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이었다. '생선 및 해산물' 섭취 또한 위험도를 10%에서 30%까지 떨어뜨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꾸준하고 적절한 '신체 활동'과 의사의 처방에 따른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NSAID)' 복용 역시 체내 염증 반응을 억제하고 항암 효과를 통해 위암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위암 발생 요인이 아시아인과 비아시아인 사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소금(염분)' 섭취는 아시아인에게는 위암 위험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주범이었지만, 비아시아인에게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위험 요인이 아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지방 섭취'에 대한 반응이었다. 고지방 섭취는 비아시아인에게는 위암 위험을 높였지만, 아시아인에게서는 오히려 위험을 낮추는 상반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는 각 인종이 가진 고유의 유전적 민감성과 오랜 기간 형성된 식습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박성수 교수는 "이번 연구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방대한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위암 발생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낸 최초의 연구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며, "특히 위암 발병률이 높은 아시아 지역에서 개인의 특성에 맞는 효과적인 식이 및 생활 습관 개선 전략을 수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학적 근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저명한 국제학술지 '위암저널(Journal of Gastric Cancer)' 최근호에 게재되며 그 공신력을 인정받았다.